2011. 10. 20. 14:36
세상이야기
<공연리뷰> 연극 '지하생활자들'
상승추구사회를 떠받치며 추락하는 인간들
내용은 신화ㆍ제의적, 형식은 '열린 연극'
(서울=연합뉴스) 강일중 객원기자 = 처음에는 여간 의아한 게 아니었다. 작품의 내용을 감안하면 형식이 너무 엉뚱했다.
서울 서계동 국립극단 내 소극장판 무대에 올려진 연극 '지하생활자들'은 배우들이 꽹과리, 장구 등과 함께 길놀이로 입장하는 장면으로부터 시작된다. 연극이 이런 식으로 열리면 웬만한 관객들은 그 후 전개될 상황에 대해 몇 가지 시나리오를 머리 속에 그리게 된다. 신명나는 놀이가 한 판 벌어지면서 배우들이 객석을 향해 말을 하거나 어떤 반응을 보이도록 유도하게 될 것이라는 것. 다른 하나는 극 중간이든 마지막이든 관객을 무대 중앙으로 나오도록 유도해 배우들과 함께 어우러지도록 하리라는 것. 또 극의 내용이 정치ㆍ사회적 이슈들에 대한 풍자가 많고 익살스러운 대사들을 통해 관객들이 카타르시스를 느끼도록 할 것이라는 것 등이다.
극장 자체도 이러한 연출이 쉽게 이뤄지도록 마당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소극장판은 무대와 객석이 분리된 프로시니엄 무대 형태의 극장이 아니다.
'지하생활자들'은 그러한 예상을 완전히 깬다. 배우와 악사 양쪽 역할을 다 하는 출연진들은 악사 역할을 할 때 동료배우들을 향해 '얼쑤!'하며 극의 진행을 돕기도 하지만 관객들에게 추임새를 할 틈을 주지는 않는다.
작품 내용이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풍자적인 이야기도 아니다. 기본적으로 내용이 그리 쉽지 않다. 이 작품은 한국의 뱀신랑 설화, 즉 '구렁덩덩 신선비' 이야기가 모티브가 되어 만들어진 것이다.
그렇지만 설화에서 처럼 버려진 아내가 지하세계에 가 뱀신랑을 찾아 행복하게 사는 결말이 아니다. 설화에서 뱀신랑이 지하세계로 오게 된 것은 굳은 약속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허물을 아내의 언니들이 몰래 태워버렸기 때문이다. '지하생활자들'에서 뱀비늘남자는 군인에 의해 살해당한다.
고연옥 작가는 뱀신랑 설화에 강호순 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인 강호순의 이미지를 입히고 이 시대 우리 사회와 인간의 모습을 그려낸다. 그가 대사를 통해 묘사하는 것은 강호순이라는 인간을 생겨나게 한 부조리한 사회조직과 인간군상들이다. 논리 보다는 이미지가 강한 대사들을 통해서다. 전체적으로 기승전결의 스토리도 없을 뿐 아니라 단문단답형의 선문답 같은 알쏭달쏭한 대사들이 자주 나온다. 스토리텔링에 익숙해 이처럼 비논리적이면서 이미지가 강한 대사를 따라잡지 못하는 관객들에게 어려울 수 밖에 없다.
또 '지하생활자들'의 내용은 신화적이고 제의적이다. 설화에서 지하세계로 남편을 찾아 떠나는 여인은 신화 속 인물의 이미지다. 그리스 신화에서 독사에게 물려 죽은 에우리디케를 찾아 지하세계로 가는 오르페우스의 모습과 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또 극중 뱀비늘남자는 제물로서 희생되는 사람의 이미지다. 극의 마지막 부분에서 뱀비늘남자는 이렇게 외친다. "인간이란 어디에 있어도 똑같지. 변하질 않아! 너희들은 (지상세계에서 지하세계의) 내 등을 밟고 서있지만, 내 밑으로는 시커먼 수렁만이 놓여 있어. 난 매일 매일 너희들의 끝없는 밑바닥을 채우기 위해 나 자신을 더 깊이 떨어뜨려야 했어." 이 부분이 작품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작가의 메시지다. 결국 지하생활자들은 언제나 상승을 추구하는 지상세계의 인간들을 위해 희생되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 같은 작품의 신화성과 제의성을 감안하면 약간 어정쩡하기는 하지만 길놀이가 있고, 개방되어 있는 무대 공간을 활용해 '열린 연극' 형식을 도입한 것이 전혀 엉뚱한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내용과는 걸맞지 않은 것으로 느껴지던 형식은 극이 전개되면서 서서히 묘한 화학적 결합을 하게 된다.
작품 안에는 우리 사회의 최근 역사 속 대형사건이나 인물 또는 사회구성원들의 집단심리를 드러내는 듯한 간결하면서도 이미지가 강한 대사들이 많다. 그런 대사들을 음미하면서 관극할 경우 좋은 느낌을 갖고 극장문을 나설 수 있는 연극이다. 그렇게만 볼 수 있다면 '지하생활자들'은 어렵지 않다. 관객의 느낌에 따라 서로 크게 다른 평가를 내릴 수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대사도 치고 악기연주도 하면서 좁은 무대에서 종횡무진하는 12명 배우들의 앙상블이 좋다.
◇ 연극 '지하생활자들' = 재단법인 국립극단(예술감독 손진책) 제작.
만든 사람들은 ▲작 고연옥 ▲연출 김광보 ▲무대디자인 김은진 ▲동작지도 고재경 ▲음악 최정우 ▲의상디자인 이명아 ▲조명디자인 김하림 ▲사운드디자인 강은아 ▲안무 이윤정 ▲분장 길자연 ▲조연출 김수희.
출연진은 조정근(뱀비늘 남자)ㆍ김지성(여인)ㆍ이기봉(수선공)ㆍ김학수(도둑)ㆍ한갑수(운전수)ㆍ윤가현(마담, 노파)ㆍ김정영(여자 여행객)ㆍ정나진(점원)ㆍ강학수(남자 여행객)ㆍ김정환(군인)ㆍ이철희(남동생, 소년 등)ㆍ변민지(어린 창녀).
공연은 국립극단 소극장판에서 10월7일~30일. 공연문의는 국립극단 ☎02-3279-2233.
ringcycle@naver.com
(끝)
出處: http://news.nate.com/view/20111020n05014
상승추구사회를 떠받치며 추락하는 인간들
내용은 신화ㆍ제의적, 형식은 '열린 연극'
(서울=연합뉴스) 강일중 객원기자 = 처음에는 여간 의아한 게 아니었다. 작품의 내용을 감안하면 형식이 너무 엉뚱했다.
서울 서계동 국립극단 내 소극장판 무대에 올려진 연극 '지하생활자들'은 배우들이 꽹과리, 장구 등과 함께 길놀이로 입장하는 장면으로부터 시작된다. 연극이 이런 식으로 열리면 웬만한 관객들은 그 후 전개될 상황에 대해 몇 가지 시나리오를 머리 속에 그리게 된다. 신명나는 놀이가 한 판 벌어지면서 배우들이 객석을 향해 말을 하거나 어떤 반응을 보이도록 유도하게 될 것이라는 것. 다른 하나는 극 중간이든 마지막이든 관객을 무대 중앙으로 나오도록 유도해 배우들과 함께 어우러지도록 하리라는 것. 또 극의 내용이 정치ㆍ사회적 이슈들에 대한 풍자가 많고 익살스러운 대사들을 통해 관객들이 카타르시스를 느끼도록 할 것이라는 것 등이다.
극장 자체도 이러한 연출이 쉽게 이뤄지도록 마당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소극장판은 무대와 객석이 분리된 프로시니엄 무대 형태의 극장이 아니다.
'지하생활자들'은 그러한 예상을 완전히 깬다. 배우와 악사 양쪽 역할을 다 하는 출연진들은 악사 역할을 할 때 동료배우들을 향해 '얼쑤!'하며 극의 진행을 돕기도 하지만 관객들에게 추임새를 할 틈을 주지는 않는다.
작품 내용이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풍자적인 이야기도 아니다. 기본적으로 내용이 그리 쉽지 않다. 이 작품은 한국의 뱀신랑 설화, 즉 '구렁덩덩 신선비' 이야기가 모티브가 되어 만들어진 것이다.
그렇지만 설화에서 처럼 버려진 아내가 지하세계에 가 뱀신랑을 찾아 행복하게 사는 결말이 아니다. 설화에서 뱀신랑이 지하세계로 오게 된 것은 굳은 약속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허물을 아내의 언니들이 몰래 태워버렸기 때문이다. '지하생활자들'에서 뱀비늘남자는 군인에 의해 살해당한다.
고연옥 작가는 뱀신랑 설화에 강호순 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인 강호순의 이미지를 입히고 이 시대 우리 사회와 인간의 모습을 그려낸다. 그가 대사를 통해 묘사하는 것은 강호순이라는 인간을 생겨나게 한 부조리한 사회조직과 인간군상들이다. 논리 보다는 이미지가 강한 대사들을 통해서다. 전체적으로 기승전결의 스토리도 없을 뿐 아니라 단문단답형의 선문답 같은 알쏭달쏭한 대사들이 자주 나온다. 스토리텔링에 익숙해 이처럼 비논리적이면서 이미지가 강한 대사를 따라잡지 못하는 관객들에게 어려울 수 밖에 없다.
또 '지하생활자들'의 내용은 신화적이고 제의적이다. 설화에서 지하세계로 남편을 찾아 떠나는 여인은 신화 속 인물의 이미지다. 그리스 신화에서 독사에게 물려 죽은 에우리디케를 찾아 지하세계로 가는 오르페우스의 모습과 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또 극중 뱀비늘남자는 제물로서 희생되는 사람의 이미지다. 극의 마지막 부분에서 뱀비늘남자는 이렇게 외친다. "인간이란 어디에 있어도 똑같지. 변하질 않아! 너희들은 (지상세계에서 지하세계의) 내 등을 밟고 서있지만, 내 밑으로는 시커먼 수렁만이 놓여 있어. 난 매일 매일 너희들의 끝없는 밑바닥을 채우기 위해 나 자신을 더 깊이 떨어뜨려야 했어." 이 부분이 작품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작가의 메시지다. 결국 지하생활자들은 언제나 상승을 추구하는 지상세계의 인간들을 위해 희생되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 같은 작품의 신화성과 제의성을 감안하면 약간 어정쩡하기는 하지만 길놀이가 있고, 개방되어 있는 무대 공간을 활용해 '열린 연극' 형식을 도입한 것이 전혀 엉뚱한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내용과는 걸맞지 않은 것으로 느껴지던 형식은 극이 전개되면서 서서히 묘한 화학적 결합을 하게 된다.
작품 안에는 우리 사회의 최근 역사 속 대형사건이나 인물 또는 사회구성원들의 집단심리를 드러내는 듯한 간결하면서도 이미지가 강한 대사들이 많다. 그런 대사들을 음미하면서 관극할 경우 좋은 느낌을 갖고 극장문을 나설 수 있는 연극이다. 그렇게만 볼 수 있다면 '지하생활자들'은 어렵지 않다. 관객의 느낌에 따라 서로 크게 다른 평가를 내릴 수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대사도 치고 악기연주도 하면서 좁은 무대에서 종횡무진하는 12명 배우들의 앙상블이 좋다.
◇ 연극 '지하생활자들' = 재단법인 국립극단(예술감독 손진책) 제작.
만든 사람들은 ▲작 고연옥 ▲연출 김광보 ▲무대디자인 김은진 ▲동작지도 고재경 ▲음악 최정우 ▲의상디자인 이명아 ▲조명디자인 김하림 ▲사운드디자인 강은아 ▲안무 이윤정 ▲분장 길자연 ▲조연출 김수희.
출연진은 조정근(뱀비늘 남자)ㆍ김지성(여인)ㆍ이기봉(수선공)ㆍ김학수(도둑)ㆍ한갑수(운전수)ㆍ윤가현(마담, 노파)ㆍ김정영(여자 여행객)ㆍ정나진(점원)ㆍ강학수(남자 여행객)ㆍ김정환(군인)ㆍ이철희(남동생, 소년 등)ㆍ변민지(어린 창녀).
공연은 국립극단 소극장판에서 10월7일~30일. 공연문의는 국립극단 ☎02-3279-2233.
ringcycle@naver.com
(끝)
出處: http://news.nate.com/view/20111020n05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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