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1. 1. 02:55
세상이야기
[삶과 문화/11월 1일] 만나고 싶은 사람, 묻고 싶은 말
계절이 계절인 만큼 문득 떠오르는 상념들이 한동안 가슴 속에 머물곤 한다. 그 상념들은 대개 과거의 일에서 비롯된 것이고 그 한가운데에는 어떤 사람에 대한 기억이 있다. 초등학교 때 짝사랑하던 여자 아이는 지금쯤 어떻게 살고 있을까. 중학교 때 단짝친구는 아직도 날 기억하고 있을까. 지금은 어떤 모습으로 변해 있을까. 이렇게 그렇고 그런 수준의 기억들은 잠시 머릿속에 머물다 피식 웃음으로 사라지기 마련이지만, 당시의 상황과 느낌과 감정들이 마치 지금 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느껴지는 기억들도 있다. 나는 그 기억들을 몇 번이라도 완벽하게 복기해낼 수 있을 정도다.
거의 30년 전 일이다. 나는 초등학교 5학년 반장이었는데 그 땐 가을 운동회 연습이 한창이었다. 5학년과 6학년이 맡은 건 군대식 제식훈련과 분열 연습이었다. 수백 명에 달하는 아이들은 호루라기 소리에 왼발을 맞추고 앞의 앞 사람의 머리가 보이지 않도록 정확하게 줄을 맞춰 행진하다가 구령소리가 들리면 오른쪽으로 머리를 돌려 '단결!'이라는 구호를 목이 터져라 외쳐야 했다. 그 모든 동작이 일사 분란하지 않으면 초가을 뙤약볕 아래에서 단체 기합을 받아야 했다. 우린 발을 잘 못 맞추는 아이, 줄을 잘 못서는 아이들을 탓하고 욕했다. 우리 반은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가 옆반 제일 후미에 따라붙어 행진해야 했고 제일 앞에 서있던 내가 인솔을 해야 했다. 그런데 너무도 긴장한 탓인지 나는 엉뚱한 곳으로 걸어갔고, 그러자 우리 반 전체가 엉뚱한 곳으로 걸어갔고 우리 반을 따르던 다른 반 아이들이 모두 엉뚱한 곳으로 걸어가는, 그야말로 난장판이 벌어졌다. 지휘대에서는 뭔가 큰소리로 웅웅거리는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렸는데 욕설이 섞여있었다.
그 순간 내 머리에서 우지끈 소리가 들렸고 나는 몇 미터 밖으로 내동댕이쳐지고 말았다. 누군가 내 머리채를 잡아 온 힘을 다해 내팽개친 것이었다. 바로 담임선생님이었다.
중학생 때였다. 하굣길에 동네 아는 형을 만났다. 얘기를 하며 함께 걷던 그 형은 인적이 드문 골목길에 접어들자 태도가 돌변했다. 가진 돈을 다 내놓으라는 것이었다. 갖고 있던 칼도 보여줬다. 주머니에 있던 동전 몇 개를 다 건네줬다. 그걸로 부족했는지 가방을 뒤지고 몸을 다 뒤졌다. 어른들에게 알리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말을 남기고 서둘러 가버렸다.
군 생활 때였다. 유독 나를 괴롭히던 고참이 있었다. 기분이 좋을 땐 좋아서 괴롭히고 기분이 나쁠 땐 나빠서 괴롭혔다. 최대한 안 마주치는 게 상책이라 생각해서 피해 다녔다. 그런데 피해 다니다 걸리면 더 큰 폭력이 가해졌다. 괴로운 시간이었지만 시간은 너무 더디게 흘렀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 어느 가을날 굳이 기억을 더듬으려 애쓸 것도 없이 또렷하게 되살아나는 아픈 추억들을 남겨준 그들에게 문득 물어보고 싶다.
왜 꼭 그래야만 했는지. 나중에 혹시 미안한 마음이 들진 않았는지. 아니, 혹시 기억이나 하고 있는지. 그 때 그 행동과 말들이 누군가의 삶에 깊은 상처로 남겨지고 있다는 사실을 짐작이나 하고 있는지. 만날 수만 있다면 한 번 만나보고 싶다. 그 땐 정말 미안했다는 말을 들을 수만 있다면 정말 모든 걸 용서해 줄 용의도 있다. 그런데 혹시 그들을 만나게 되더라도 내가 누구고 그 때 그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할 것 같아서, 그렇게 되면 상처가 더 깊어질까 봐 무섭다. 그리고 혹시 나는 누군가의 기억 속에 잊혀지지 않는 가해자로 각인돼 있는 건 아닌지 더 무서운 생각도 들었다. 좋은 계절의 상념 치고는 그리 아름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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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이 계절인 만큼 문득 떠오르는 상념들이 한동안 가슴 속에 머물곤 한다. 그 상념들은 대개 과거의 일에서 비롯된 것이고 그 한가운데에는 어떤 사람에 대한 기억이 있다. 초등학교 때 짝사랑하던 여자 아이는 지금쯤 어떻게 살고 있을까. 중학교 때 단짝친구는 아직도 날 기억하고 있을까. 지금은 어떤 모습으로 변해 있을까. 이렇게 그렇고 그런 수준의 기억들은 잠시 머릿속에 머물다 피식 웃음으로 사라지기 마련이지만, 당시의 상황과 느낌과 감정들이 마치 지금 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느껴지는 기억들도 있다. 나는 그 기억들을 몇 번이라도 완벽하게 복기해낼 수 있을 정도다.
거의 30년 전 일이다. 나는 초등학교 5학년 반장이었는데 그 땐 가을 운동회 연습이 한창이었다. 5학년과 6학년이 맡은 건 군대식 제식훈련과 분열 연습이었다. 수백 명에 달하는 아이들은 호루라기 소리에 왼발을 맞추고 앞의 앞 사람의 머리가 보이지 않도록 정확하게 줄을 맞춰 행진하다가 구령소리가 들리면 오른쪽으로 머리를 돌려 '단결!'이라는 구호를 목이 터져라 외쳐야 했다. 그 모든 동작이 일사 분란하지 않으면 초가을 뙤약볕 아래에서 단체 기합을 받아야 했다. 우린 발을 잘 못 맞추는 아이, 줄을 잘 못서는 아이들을 탓하고 욕했다. 우리 반은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가 옆반 제일 후미에 따라붙어 행진해야 했고 제일 앞에 서있던 내가 인솔을 해야 했다. 그런데 너무도 긴장한 탓인지 나는 엉뚱한 곳으로 걸어갔고, 그러자 우리 반 전체가 엉뚱한 곳으로 걸어갔고 우리 반을 따르던 다른 반 아이들이 모두 엉뚱한 곳으로 걸어가는, 그야말로 난장판이 벌어졌다. 지휘대에서는 뭔가 큰소리로 웅웅거리는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렸는데 욕설이 섞여있었다.
그 순간 내 머리에서 우지끈 소리가 들렸고 나는 몇 미터 밖으로 내동댕이쳐지고 말았다. 누군가 내 머리채를 잡아 온 힘을 다해 내팽개친 것이었다. 바로 담임선생님이었다.
중학생 때였다. 하굣길에 동네 아는 형을 만났다. 얘기를 하며 함께 걷던 그 형은 인적이 드문 골목길에 접어들자 태도가 돌변했다. 가진 돈을 다 내놓으라는 것이었다. 갖고 있던 칼도 보여줬다. 주머니에 있던 동전 몇 개를 다 건네줬다. 그걸로 부족했는지 가방을 뒤지고 몸을 다 뒤졌다. 어른들에게 알리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말을 남기고 서둘러 가버렸다.
군 생활 때였다. 유독 나를 괴롭히던 고참이 있었다. 기분이 좋을 땐 좋아서 괴롭히고 기분이 나쁠 땐 나빠서 괴롭혔다. 최대한 안 마주치는 게 상책이라 생각해서 피해 다녔다. 그런데 피해 다니다 걸리면 더 큰 폭력이 가해졌다. 괴로운 시간이었지만 시간은 너무 더디게 흘렀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 어느 가을날 굳이 기억을 더듬으려 애쓸 것도 없이 또렷하게 되살아나는 아픈 추억들을 남겨준 그들에게 문득 물어보고 싶다.
왜 꼭 그래야만 했는지. 나중에 혹시 미안한 마음이 들진 않았는지. 아니, 혹시 기억이나 하고 있는지. 그 때 그 행동과 말들이 누군가의 삶에 깊은 상처로 남겨지고 있다는 사실을 짐작이나 하고 있는지. 만날 수만 있다면 한 번 만나보고 싶다. 그 땐 정말 미안했다는 말을 들을 수만 있다면 정말 모든 걸 용서해 줄 용의도 있다. 그런데 혹시 그들을 만나게 되더라도 내가 누구고 그 때 그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할 것 같아서, 그렇게 되면 상처가 더 깊어질까 봐 무섭다. 그리고 혹시 나는 누군가의 기억 속에 잊혀지지 않는 가해자로 각인돼 있는 건 아닌지 더 무서운 생각도 들었다. 좋은 계절의 상념 치고는 그리 아름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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